일기장

와 내가 다시 달리게 되다니..!

별하(BH) 2021. 5. 23. 18:01

지난 십여년간 너무 많은 일이 있었고 그것들이 내 근간을 흔들고 자아를 부수고 나를 좀먹어 바스라뜨렸다.

그 이전에 나의 유소년기 역시 눈물나게 지긋지긋하고 어둡고 고통스러운 것이었지만, 그때 나를 구원했던것이 바로 달리기 였다.

모태신앙이었던 나는 더이상 신을 믿거나 찾지 않았고 속이 텅텅 빈 껍떼기만 남은 마네킹 처럼 공허만이 나를 채우고 있었다. 그렇게 아무것도 하지않고 보내기를 수개월, 나 자신의 어린 나이와 지난날 가졌던 미래에 대한 빛나는 소망들이 너무나 안타까워 나는 하늘에 빌었다. 내가 빈 것은 금은보화나 억만금이 아니라 이 경주를 스스로 끝내는 어리석은 짓을 하지 않게 해달라고, 그리고 이 길을 헤쳐갈 지혜를 달라는 것 뿐이었다... 그리고 다음날 부터 나는 근처 초등학교 운동장에 나가 달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십키로 가까이 살을 빼고 새로운 인생을 살기를 삼년, 고통으로 부터 독립했다고 믿었지만 그건 그저 세상의 어두움과 시련의 일부에서 벗어난 것일뿐 나를 두렵게하고 좌절하게 하는 일들은 우연을 가장하고 인연인 척 내 삶을 귀신 같이 찾아와 내 마음을 흠씬 두드려 팼다.

그리하여, 봐도 봐도 놀라운 체형으로 변해 버린 내 모습은 아직도 내게는 낯설다.

그러나 내 주위사람들은 내게도 그런 날씬하고 건강했던 시절이 있다는 것을 반대로 믿기 어려워 한다.

그래서 남들 다 그러하듯 나도 여러가지 체중 감량 방법들을 시도 해봤고 남들처럼 죄다 실패해 요요로 돌아왔다.

그런데!

내가 정말 그토록 달리기만은 하지 않으려 했던 것은 내가 제일 싫어하는 운동이 달리기 이기 때문이다.

그것으로 구원받았으면서도 두번 할 용기는 나지 않을 정도로 힘들고 싫은데 요즘 밤에 잠잘때 꿈에서 조차 나 달려야겠어, 하는 마음이 자꾸 커져서 결국 오늘 달리고야 말았다!!

아!

정말 상쾌하고 보람차다.

내가 달리기를 통해 새로 시작할 수 있었던 장점들을 다시금 느낄 수 있는 하루였다. 

어찌보면 덕질이 나를 다시 달리게 해줬다고 할 수 도 있다.

내가 덕질하는 대상들을 좋아하는 건 그것이 인물이든 사물이든 관념이든 작품이든 모두 열과 성이 들어가 그 자체로 빛나고 아름답기 때문이다.

그래서 덕질을 하면서 팍팍 줄어든 나의 에너지를 보조배터리 쓰듯 덕질 하는 대상들을 통해 에너지를 보충 받는 느낌이다. 

결국 오늘의 내가 열심히 달린 건, 모두 내가 열렬히 애정하는 당신들이 열심히 살아 내 준 덕분이다.

정말로 크게 감사한다.

그리고 나는 내일도 달릴 것이다!